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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4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2]
2009/01/09   상실의 상속 감상 [1]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흑묘백묘론.
중국의 덩샤오핑의 제창한 유명한 말이다. 고양이의 원래 목적은 쥐를 잡는 것이므로 그를 위해선 고양이가 무슨 색인가는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나는 10대를 소위 좌파 정권이라고 불리는 시대에서 보냈고 20대에 우파 정권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치적 이념이라는 것이 어떤 계기가 주어진다면 바뀔 수 있는 거라지만 지금 나의 정치적 시각은 분명 우보다는 좌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는 가려운 곳을 벅벅 긁어주는 책이었다.

토목 사업을 이용한 경기 부양.
현 정부가 열변을 토하면서 하는 말이다. 대표적인 것이라면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대답할 수 있는 대운하 사업이 있다. 이준구 교수는 이 운하 사업의 시대착오 성, 민자 유치의 맹점을 놀랍게 지적하고 있다.

도대체가 지금이 어느 때인데 토목 산업으로 경기 부양을 하겠다는 것인가. 미국 발 금융위기. 경제학도라면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경제는 실물과 금융으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제학에서 금융은 어디까지나 실물시장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제조업의 과잉으로 인한 이윤 감소와 금융 규제의 완화는 결국 금융 시장의 비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금융 시장이 휘청거리자 부동산 거품이 한번에 꺼져버리고 실물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쳐버렸다.

과거 1920년대 경제 대공황 때는 시장 정책의 실패, 즉 공급 과잉의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 때문에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대규모 토목 공사를 이용한 일자리, 수요창출로 수요공급의 균형을 맞추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쿠오바디스에서 언급하듯, 녹색 뉴딜정책 자체가 모순된 것이다. 토목 공사로 환경을 살리겠다는 말은 초등학생조차 믿지 않을 말이다. 또한 금융 위기로 시작한 ‘새로운’ 문제를 1920년대식 토목 공사 해법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인가.

아마추어 정부.
기업가 출신의 대통령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분명 프로로서의 대통령이었다. 이준구 교수의 이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경제는 살릴 수 있을 거라고 나도 생각했다. 하지만 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아무리 잘해봐야 아마추어다.

747 공약.
현 정부는 분명 우파 정권을 표명하고 있다. 파이를 나누는 것보다는 크기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참여 정권이 5%성장에도 배척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서민의 삶이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개선하지 않는 다면 7% 성장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라는 말은 절로 수긍이 갔다.

책 전반에 걸쳐서 이준구 교수는 지지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분명 이명박 대통령은 최대 표차로 당선이 되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아닌 ‘경제를 살릴 수만 있다면’이라는 조건부지지였다. 라는 사실을.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에 대한 지지가 맹목적인 것이라고 현 정부는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부디 그 사실을 망각하지 말고 잘못했을 때는 잘못했다고 말하고 모두가 염려할 때는 확실히 안하겠다고 말하는 정부가 되었으면 한다.

고양이엔  분명 색깔의 차이가 있다는 정부. 하지만 경제엔 +와 -만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의 표지의 말처럼 경제엔 옳은 쪽은 있어도 오른쪽은 없다. 금융 실패로 모두가 시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이 시기에 홀로 시장 자유를 외치는 정부.

파란 괴물.

이준구 교수처럼 이 정부를 향해 외치고 싶다.

 


“중요한 건 경제야. 바보.”

 

 


렛츠리뷰
by 풍월객 | 2009/06/24 23:26 | 트랙백 | 덧글(2)

상실의 상속 감상

이 책을 받기 전에 나는 이 책이 한 가정에서 가난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을 묘사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책은 한 가정이라기보다는 세계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주요 인물들은 인도인이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제 3세계 사람들이다. 물론 요즘 인도는 소위 BRIC's의 일원이며 IT강국이지만 이 책은 아직 인도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80년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주요 인물들은 인도인이지만 그들의 사회계급( 카스트로 인한 사회계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에 의한 계급. ) 은 다르다. 하지만 아무리 부유할지라도 아무리 지식을 많이 쌓았을지라도 그들은 인도인이기에, 서양을 마주한 순간 하잘 것 없는 제 3세계인이 되어 버린다. 그들에게 있어 서양은 존경해야할 존재이자 낙원처럼 보인다. 서양이기에 자신들보다 우월하고 또 그것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보며 막연히 하는 생각( 부부 관계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든지, 자식이 말썽이라든지 하는.)들을 하므로 한편으로는 서양문화를 저열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어디서나 가난한 이는 부자를 보며 존경과 경멸을 동시에 하는가. 약간 슬픈 생각이 들었다.

판사가 유학 시절 느낀 열등감. 판사는 분명 인도에선 지식인이며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이로서 영국행 배의 올라탔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은 일반 인도인과는 다른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과 대면한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분명 이 열등감은 영국이라는 세계가 그에게 준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내면의 세계가 깨닫게 해준 것이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교하고 비교할수록 끊임없이 얻는 열등감. 결국 그는 그의 세계를 외부와 단절함으로 비교하기를 그만 두웠다.

가난은 비교를 통해 그 사람의 뼈에 사무치게 된다. 가난을 극복하려고 발버둥 쳐보지만 극복된 미래는 아쉽게 미래에 있다. 그리고 그 미래조차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현재는 언제가 자신에게 가난이라는 무거운 멍에를 씌우고 있다. 비교를 하면 할수록 얻는 절망감과 억울함. 나도 한 때 느껴본 감정이기에 판사의 행동이 옳다고는 못하겠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비주의 불법 노동자 생활은 우리 주변의 외국인 노동자를 떠올리게 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동남아인들. 인도, 태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와는 다른 모습과 가난의 냄새. 이 책은 비주를 통해 그들의 삶을 시종일관 음울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비주는 분명 인도보다 나을 것 이라고 생각한 미국에 와서 오히려 인도보다 못한 생활을 한다. 인도보다는 부(富)라는 단어에 익숙한 미국이지만 그에게 있어서 부(富)라는 단어는 멀기만 하다.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은 그를 무겁게 누르고 있고 그의 정신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민족에 대한 자부심은 나날이 부서져간다. 가난은 결국 가난을 부를 뿐인 것일까?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부유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최소한의 부라는 건 어디에서나 필요한 것일까. 씁쓸하다.

수많은 책들에서 재산은 정신보다 우월할 수 없다고 말한다. 태산같이 많은 재산이 있을 지라도 바늘만한 깨달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깨달음보다는 부가 우리의 세상을 너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가난한 곳일수록 불공정과 불행이 만연해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다. 설령 부유한 곳이라도 가난한 이에게 제 3세계인에게 공정은 베풀어지지 않는다. 또한 가난한 이는 지적 능력 또한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언제부터인지 모를 오래전부터 가난이라는 말은 불행이라는 말과 이음동의어가 된 것일까.

가난은 상속된다. 그리고 그것은 무언가 상실을 경험하게 한다. 설령 그것이 극복된다고 할지라도 과거라는 변할 수 없는 것이 가난과 함께 있을 것이다. 맞서 싸우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존재. 그래도 좌절하고 절망하기보다는 그 세계와 맞써 싸우고 싶다.


       


렛츠리뷰
by 풍월객 | 2009/01/09 23:05 | ┣소설 | 트랙백 | 핑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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