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딸랑
카페에 문을 여니 문에 달려있던 종이 울린다. 다행이도 소리가 들렸다고 이쪽을 보는 사람은 점원뿐이다. 살금살금. 조심히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제일 구석진 자리로 향한다. 아직 안 왔겠지. 약속시간까지 한 시간 가량 남았다. 왔을 리가 없다. 카페 주위를 힐끔 쳐다보고 없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구석진 자리로 향한다.
“페이트”
“힉!”
“뭘 그렇게 놀라.”
“유, 유노구나”
카페의 한 쪽. 유노가 자리에 앉아 날 쳐다보고 있다. 난 또 누구라고.
“왜 그렇게 얼이 빠진 얼굴이야?, 나 때문에 놀란 거야?”
“그건 아니야.”
확실히 놀랐다면 놀랐지만. 원래 앉으려던 자리를 포기하고 유노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유노를 마주보며 앉는다.
“그래?, 근데 여긴 어쩐 일이야?”
“…………”
침묵. 뭐라고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말하기 싫은가 보구나”
“미안”
“뭐 됐어.”
“유노는 뭐하고 있었어?”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말을 걸어본다. 그러고 보니 유노가 여긴 웬일이지?
“흠~, 뭐하고 있는 것 같아?”
순진무구하게 장난을 치는 아이의 웃을 지으며 묻는 유노. 물어본 말에 한번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이번 것을 조금 깊이 생각해서 말하자. 유노를 쳐다본다. 테이블엔 치우지 않은 커피 잔이 여러 개 놓여 있는 것이 꽤 장시간 있었던 듯하다. 또 테이블엔 여러 서류가 흩어져있다. 그 서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유노. 혹시
“서고 자료 정리?”
“……, 나라도 여기서 그런 건 안 해”
“으응, 그렇겠지.”
부끄러움에 얼굴이 살짝 화끈해진다. 유노는 그런 날 보며 살짝 웃는다. 우, 황당하다고 생각했겠지.
“논문 검토 중이었어”
“논문?”
“어, 사서 중에 하나가 이번에 학회에 논문 발표를 하거든. 그래서 나에게 논문 좀 검토해달라고 요청했어.”
“그렇구나.”
유노가 다시 논문을 집어 들더니 천천히 살펴본다. 평범한 글을 검토해주는 것도 힘든데 논문이라니. 검토라는 작업은 작성자의 지적 수준이나 그 이상의 수준이 있어야 가능할 텐데, 새삼 소꿉친구의 대단함을 깨닫는다. 거기다가 발표 전 논문을 유노에게 보여주다니, 보통 논문 유출을 꺼리기 때문에 발표 전에는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인데. 사서가 얼마나 유노를 신뢰하고 있을 지 상상이 간다. 근데 논문 검토나 자료 정리나 비슷하잖아. 또 논문 검토하고 카페는 무슨 상관이지?
“유노”
“응?”
“그런데 카페는 어떻게 온 거야?”
지금 무한서고는 한창 업무 중 일 텐데
“아, 그게……”
유노는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해 한다. 흐응,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구나.
“유노, 설마 사서들에게 일 맡기고 도망 온 거야?”
그렇다면 정말 실망이다.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야”
“반대?”
“그게……, 사실은 쫓겨났어.”
자포자기하듯 한숨을 쉬는 유노.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무한서고의 리더가 무한서고에서 쫓겨나?
“아, 이상한 오해는 하지마. 페이트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야.”
“그럼?”
“한 삼일철야하고 나서 이제 좀 쉬려고 했더니, 사서가 논문을 주더라고. 그래서 쉬는 겸 이거보고 다시 일하려고 했더니”
“했더니?”
“알프가 그걸 보고 화내면서 쫓아내버렸어.”
“…………”
유노는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투덜거린다. 누가 말려 이 워커홀릭. 그나마 알프가 조절하는 것 같지만, 알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이 남자 집에 안가고 여기 있잖아.
살짝 한숨이 나온다. 왜 내 주위엔 워커홀릭이 많은 걸까. 오빠도 그렇고 유노도 그렇고, 하야테도 6과 때문에 워커홀릭이 되어 버렸고 나노하도 슬슬 그런 증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돼겠다. 전염되지 않으려면 일단 여기있는 유노부터 고치도록 알프에게 단단히 말해둬야지.
유노가 보기만 해도 쓴 맛이 올라올 것만 같은 커피를 마신다. 그러고 보니 업무 끝난 유노와 만나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조용히 유노를 관찰한다. 군데군데 머리카락이 삐져나와있지만 그래도 단정히 묶은 머리카락. 철야로 일했지만 그래도 잘 씻었는지, 얼굴에 윤기는 없지만 깨끗하다. 유노군의 여성스러운 얼굴이 논문을 보고 있면서 점점 남성스러운 표정이 된다. 역시 유노 잘 생겼네. 옷은 셔츠에 정장 바지 차림. 넥타이는 불편했는지 테이블 한쪽에 놓여 있고 상의 또한 위쪽 단추 몇 개가 풀려져있다. 유노 의외로 근육이……, 우~, 눈을 어디다 둬야 할 지 모르겠다.
“페이트”
“으응!”
유노의 상반신에 고정되었던 시선을 급히 위로 올린다. 안, 안 들켰겠지?
“여기 계속 앉아있어도 되는 거야?”
“안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여기 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그게, 사실 여기 온 이유는……”
딸랑딸랑
갑자기 문이 열린다. 남자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급하게 손목시계를 본다. 15분전. 의자에 숨어 남자를 주시한다. 우……, 사진 속 그 남자다.
“페이트”
“힉!”
“또 놀라네. 아는 사람이야?”
유노는 내가 수상하게 바라보고 있는 걸 보고는 의심쩍었는지 물어본다.
“그게……”
이런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온다. 급히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려본다. 남자가 옆을 지나 한 쪽 구석에 앉는 소리가 들린다. 살았다.
『도대체 누군데 그렇게 숨는거야』
대화가 들리면 곤란할거라고 생각했는지, 유노는 고맙게도 염화로 말을 걸었다.
『그게 사실은……』
『사실은?』
『나 오늘 맞선 보러 왔어』
유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다. 당황한 눈치다.
『그럼 저 남자는 맞선상대』
『으응, 아마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어머니가 보라고 메일을 보내셔서, 나오긴 했는데 정작 만나보려고 하니 용기가 안 나네.』
어머니에게서 날아온 메일. 맞선 보라고 강압적으로 나오신 건 아니었지만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고 수락했다. 수락하고 나서 후회했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권유였던지라 6과 몰래 치장하고 나왔다. 올때까지만 해도 단단히 결심했었는데 정작 오니 만나기 싫다.
『흐응, 린디씨 추천이라. 좋은 남자인가봐?』
『무슨 장관 아들이라고 했어』
종이가 닳도록 읽은 프로필엔 그렇게 써있었다. 거기다가 본인도 엘리트 코스를 밟아 앞으로 전도유망한 삶을 살 가능성이 농후한 인재로 외모 준수 성격 쾌활한 남자라고 써져있었다. 정말로 화려한 스펙. 내가 봐도 ‘이보다 좋은 남자는 없습니다.’라고 보증수표로 써져있는 것 같았다.
『헤에, 그러고 보니 만난 적 있는 사람 같다.』
『그래?, 유노가 보기엔 어땠어?』
『내가 보기엔 괜찮은 사람 같던데』
『그래……』
역시 만나야겠지. 맞선 장소까지 왔는데 바람 맞추면 실례다. 거기다가 소개시켜준 어머니 체면도 있고, 상대방 체면도 있다. 꾹 참고 만나서 하하호호하다가 싫으면 더 이상 안 만나면 된다. 그래 만나자. 만나는거야. 만나야되는데……, 이성은 계속 주장하는데 다리는 마치 기둥이 된듯 바닥에 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만나기 싫어?』
『솔직히 조금……』
『그래?, 그럼 도와줄까?』
『응?』
남자를 보고 있던 시선을 유노에게 돌리자, 유노가 갑자기 일어난다. 그러더니 한 쪽에 앉아있던 남자에게 다가간다. 뭘 하려고 하는거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고개를 최대한 낮추고는 의자너머로 시선을 고정한다. 대화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유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말을 하고 있다. 뭐라고 말하는걸까? 남자는 당황하더니만 어느새 납득하는 얼굴을 하고는 유노의 어께를 두드린다. 그러자 유노는 어색하게 그리고 조금은 부끄럽게 웃는다. 남자는 유노에게 인사하고는 멀리서 나에게도 인사했다.
“아!”
급하게 일어나 인사한다. 남자는 내 인사를 받고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나갔다. 도대체 뭐지?
“역시 좋은 사람이었다.”
유노는 기분 좋은 듯 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했기에 그런 얼굴로 나가는 걸까
“뭐라고 말했어?”
불안한 마음으로 물어본다.
“아, 별거 아니야”
‘동물은 동물이고 사람은 사람이다’라는 별거 아닌 사실을 말하듯 말하는 유노.
“뭐라고 한건데~”
정말 별 말 안한걸까? 더욱 궁금해진다.
“내 여자인데, 어머니가 반대하셔서 억지로 맞선 나왔다고 했어.”
…………뭐? 순간 머리가 정지한다.
“정말 좋은 남자더라. 응원까지 해주고 갔어.”
유노는 잠시의 만남이 아쉬웠는지 남자가 나간 출구를 바라본다. 이 남자가! 지금 한 말이 얼마나 폭탄 발언인지 모르는거야!
“어쩌려고 그랬어!”
“응?”
“그러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어떡해!”
아무리 도와주려고 한 거지만 소문이 나면 나도 유노도 곤란하다.
“설마, 절대 그럴 사람 아니야.”
도대체 몇 마디 나눠보고 그건 어떻게 아는 걸까. 진지하게 믿고 있는 유노를 보고 있으니 한숨이 나온다. 이게 그 유명한 남자들의 유대라는건가.
“하아~”
곤란하다. 정말 곤란하게 됐다. 소문이 났다가는 나도 유노도 곤란해진다. 거기다가 소문이 나지 않아도 맞선이 파토 났다는 걸 알면 어머니가 왜 그랬냐고 물어볼 것이다. 그럼 어떡케 대답하지. 사실대로 말하면 웃는 얼굴로 다른 프로필을 건네주실 것이다. 그러면 오늘 일을 다시 반복해야 할 텐데
“왜 그리 한숨이야.”
사태의 원흉께서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약간 화가 나지만 참자. 그래도 악의는 없었으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아!”
실수로 커피잔을 쳐서 테이블에 커피가 흘렀다.
“이런, 휴지가 어딨더라”
유노가 급히 휴지를 꺼내 내 쪽으로 몸을 숙이다. 셔츠가 앞으로 쏠려 보이는 유노의 상반신. 유, 유노의 쇄골이!
“결국 맞선이 취소되면 안 됐던 거야?”
커피를 닦아주고 유노군이 묻는다. 쇄골라인에 도취됐던 정신을 차리고 대답하자.
“으응”
“괜한 짓을 한거네”
“그건 아니야”
진짜로 하기 싫었으니까. 유노에겐 감사의 인사를 몇 번해도 모자르다.
“흐응……, 그럼 페이트”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올려놓는 유노. 묘하게 섹시하다.
“응?”
“나랑 맞선 볼래?”
“뭐?”
지금 유노, 뭐라고?
“싫은거야?”
“아니야!”
전력전개로 고갯짓을 한다. 굳이 말하자면 좋다. 무지 좋다!
소문이 나는 것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어머니에게 변명할 수도 있다. 최고의 방법이다.
“그럼 괜찮은거지?”
“으응……”
유노군이 웃는다. 갑자기 맞선상대라고 생각하니 괜시리 시야를 피하게된다. 눈을 아래쪽으로 내린다. 방금 봤었던 유노의 쇄골이 생각한다. 꽤……좋았지.
“흠흠, 페이트양”
부끄러운듯한 유노의 목소리. 갑자기 정중한 표현이 당혹스럽다.
“응?”
“저와 오늘 어울려주시겠습니까?”
유노의 가녀린, 그러나 남자다운 손이 나에게 다가왔다.
“네, 유노씨”
수줍게 유노의 손을 잡는다.
어머니 오늘 맞선은 조금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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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님 만히트 축전용 짤막 유노페
쓸만한 떡밥이 떠오르지 않은채로 급하게 쓰다보니
그냥 평작 정도 밖에 안된것 같습니다. ^^;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스 리리컬 동맹단 가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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