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늦봄.
기동 6과가 해체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봄의 기운이 아직 완연한 가운데 더위가 아지랑이처럼 슬슬 올라오려고 하고 있다. 벚꽃은 이제 다 지었지만 푸르른 잎사귀가 싱그러움을 발하고 있고 날씨는 가을 날씨처럼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여 피크닉을 나간다면 이때가 절호의 기회일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화창한 날씨와는 달리 내 방은 지금 북풍설한이 몰아치고 있다.
“나노하”
페이트의 목소리. 옆에는 하야테도 앉아 있다. 나를 바라보는 추궁의 눈길. 알, 알았다고.
“그게 기동 6과 때문에 바빴잖아.”
오늘은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보고 하는 날. 무슨 보고냐 하면.
“하지만 나노하, 그래도 유노랑 통화정도는 할 시간이 있었잖아.”
유노군과의 관계진척 보고……를 가장한 청문회. 물론 피심문자는 나고 심문자는 페이트와 하야테다.
“그게 머릿속에 기동 6과일로 가득 차있어서”
아침에 일어나 신인들을 훈련시킨다. 재빨리 점심을 먹고, 먹고 난 후에는 오후 훈련. 저녁에는 밀린 서류작업을 하고 남는 시간은 다음날 있을 스타즈의 훈련 스케줄을 짠다. 바쁜 일상. 물론 이 가운데 시간이 안 남는 건 아니었다. 가운데 휴식시간도 있었고 가끔은 처리할 서류가 없는 날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러고 보니 나노하는 하나에 매진하면 다른 건 못 봤었지.”
우……, 역시 10년 친구. 부정할 수 없다.
“무, 물론 유노군과 연락하는 걸 완전히 까먹은 건 아니었어!, 나도 연락할 생각을 했었다고 근데 마침 유노군과 만났었잖아.”
“아, 호텔 아구스타 때.”
“으응.”
그 때 페이트가 자리를 비켜준 덕분에 유노군과 오랜만에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라 어색한 나 때문에 유노군은 열심히 이야기를 주도해주었다. 행복한 시간.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바보같고 원망스러울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헤어질 때 정말 아쉬워하며 다음에는 꼭 내가 연락하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럼 아구스타 이후로 연락은 했었던 거야?”
“그게……”
“나노하……”
페이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점점 더 강해지는 추궁의 눈길. 어, 어쩔 수 없었다고 그 뒤로 더 바빠졌잖아. 티아나 일도 있었고, 비비오 일도 있었고.
“연락했었어!”
“언제?”
“그게 요람일 건으로……”
“그거 유노가 한 거 아니었어?”
“어, 어쨌든!, 난 만족했었다고.”
그 때 한동안 유노군 얼굴을 못 봐서 욕구불만 상태였었다. 하지만 그 때는 정말 바빴고 나 자신도 일에 집중하느라 연락할 엄두를 못 냈다. 그 때 유노군이 요람 건으로 나에게 연락했던 것이다. 비록 사무적인 일로 연락한 거였지만 유노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기쁘고 또 기뻤다. 거기다가 유노군의 위로에 용기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럼 6과 때는 그렇다치고, 최근엔 왜 안한거야?”
윽, 정곡을 찔렸다. 약간 자포자기한 얼굴로 한숨을 쉬는 페이트. 우……, 페이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지금 내 변명이 얼마나 궁색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게……, 유노군과 연락하고 한동안은 만족감에 당분간은 전화 안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에 전화 안하고 있는 데, 요람 일하고 6과 정리 작업으로 바빠지고, 그러다보니 전화하는 걸 차일피일 미루게 되고, 또 일이 끝난 뒤에는 너무 오랜만에 전화하는 것 같아서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악순환이구나.”
한숨을 쉬는 페이트. 내가 생각해봐도 너무 완벽한 악순환이다. 그것도 악순환인 걸 알면서도 못 끊는 악순환.
“이 문디 가스나, 결국 변명이잖아!”
옆에서 참고 듣고 있던 하야테가 마침내 언성을 높여 말한다.
“하, 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사건이 연이어 터지지 않았으면 덜 바빴을테고 그림 유노군과 연락할 시간이 생기니 이런 악순환도 안 생겼을 거다. 모든 건 스칼리에티 때문이야. 내가 바보같아서 그런 게 아니라고.
“니가 니트로박사가!, 아예 예산도 더주까?”
우, 할말없다.
“하야테, 지금은 나노하를 몰아붙이기 위해 모인 게 아니라 나노하의 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모인 거니까. 그런 말은 하지마.”
나이스 어시스트 페이트. 정말 고마워.
“알았데이, 나노하,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결국 유노와 어떤 사이가 되길 원하노.”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하야테와 페이트가 긴장된 눈빛으로 쳐다본다. 역시 이럴 땐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겠지.
“난, 난 유노군이 비비오의 파파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어.”
그래 난 유노군이 비비오의 파파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누군가 젊은 나이에 무슨 소리냐 좀 더 연애를 해보고 결정해라, 혹은 그 나이에 소꿉놀이냐고 욕할지 모르지만 정말 난 절실하다. 비비오에겐 파파가 필요하다. 그것을 지난 몇 개월 동안 비비오를 키우면서 절실하게 깨달았다. 비비오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파파의 부재는 어쩔 수 없는 별개의 문제. 비비오에겐 파파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에겐 연인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침대에서 비비오를 껴안고 자고 싶다. 나에겐, 나에겐 유노군이 필요하다.
“파파인가.”
“파파라, 좋은 생각이구만”
“하지만 현실은……”
꿈은 높은 데 현실은 밑도 끝도 없이 암울하다. 목적지에는 꼭 가야되는 데 흔들다리가 무서워서 한 발자국도 못 내미는 심정. 지금 유노군에게 연락 못하고 있는 내 심정과 같다. 지금 상황이라면 유노군이 비비오의 파파가 되기는커녕 소꿉친구의 자리까지 위태롭다.
“확실히 지금은 힘들겠지.”
“뭐, 이 가스나 전화도 몬하고 있으니까.”
너희들 지금 날 도와주러 온 거니 아니면 염장 지르러 온거니.
“무언가 좋은 해결 방법은 없을까.”
흔들다리를 건너지 않고 목적지로 갈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여행자의 심정으로 물어보았다.
“난 모르겠구만”
하야테가 멋쩍게 웃는다. 역시 방법은 없는걸까.
“아!”
순간 페이트가 무언가 깨달았는지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친다.
“페이트 뭔가 깨달았으면 가르쳐줘”
“별 거 아니긴 한데, 나노하가 직접 무한서고로 가보면 어떨까?”
“내가 무한서고로?”
페이트 그건, 나에겐 흔들다리를 돌아서 가지 말고 뛰어서 가라는 말이야.
“응. 의외로 전화연락보다는 직접 만나는 게 더 쉽게 이야기할 수 있거든.”
아래를 보지 않고 가면 안전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페이트. 확실히 일리는 있다.
“하지만, 대화뿐이잖노, 이 가스나는 긴장해서 파파의 피읖자도 못 꺼낼끼다.”
확, 확실히 그렇겠지. 저번에 아구스타때 대화도 유노군이 대화를 주도해준 덕분에 겨우 어색함을 면한 거니까. 이번엔 내가 대화를 주도하면 긴장해서 정말 파파의 피읖자도 못 꺼낼 것 같다. 아, 일말의 희망이
“하야테도 참!, 나노하 정신차려!”
유노군이 멀어져 간다. 희망의 불씨가 꺼지려고 하고 있다. 미안해 비비오 역시 파파는 무리일 거 같아.
“나노하!, 하야테 말도 일리는 있지만 그래도 아예 대화도 못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페이트도 부정 못하는구나. 뭐, 희망이 없는건 아니려나, 그래도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뭐 더 좋은 방법이 없는 건 아이다.”
뭐?
“뭔데, 뭔데”
하야테의 어께를 잡고 흔든다. 빨리 이야기해 하야테!
“흔들지말그라.”
“응”
흥분해서 하야테를 흔들던 손을 떨어트린다.
“뭐, 제일 간단한 방법인기라. 거기다가 나노하라면 쉽게 할 수도 있고.”
도대체 무슨 방법이길래. 하야테 웃지만 말고 빨리 이야기해.
“유노를 덮쳐라.”
응?
으응?
으으응?
“뭐어어어어어엇~!”
하야테 지금 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왜?, 좋은 방법아인가, 유노도 그렇게 싫어하지 않을끼고, 거기다가 유노가 책임감 하나는 무지 강하니, 나노하를 확실히 책임져줄끼다.”
우, 우, 머리에 피가 쏠린다. 유노군을 덮쳐?, 레이징 하트를 가지고 사서장실로 침입한 다음에……
“나노하!, 그것만은 안돼!”
페이트의 목소리 덕분에 망상의 바다에 빠져나온다. 위, 위험했어. 고마워 페이트.
“나노하, 하야테 말은 무시하고 무한서고로 가봐.”
“으응, 알았어. 무한서고로 가볼게”
“잘 생각했어.”
“뭐, 열심히 하그라.”
댕
시계가 12번 울린다. 아차 오늘은 비비오가 오전 수업하는 날이었지.
“나 비비오 데리러 가볼게!”
“잠깐 나노하, 무한서고는!”
“돌아오면서 들릴 거야 이만 가볼게~”
관리국에서 가장 바쁜 부서는 어딜까. 국원들에게 물어보면 여러 부서의 이름들이 거론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열이면 아홉, 백이면 구십이 무한서고의 이름을 꺼낼 것이다. 실제로 무한서고는 항시 바쁜 편이다. 그러나 세간의 소문처럼 ‘국원들의 무덤’이라든지 ‘워커홀릭의 성지’인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부서에 비해 바쁠 뿐. 오늘도 여러 부서에서 온 요청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서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수 십 권의 책이 날아다니고 수 백 페이지나 넘어간다. 수천 개의 글자를 읽고 해석하다. 실로 분주한 모습. 여유를 가지고 일하면 좋으련만 갑자기 일이 밀려오는 바람에 지금 무한서고는 매우 분주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서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한 아이가 서고 중심부에서 멀뚱히 서있다.
“누구니?”
금발의 오드아이. 한쪽 눈의 색이 나와 같은 초록색이다. 적당히 있는 볼 살이 ‘저 좀 고집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여기는 통제구역인데 어떻게 들어온 걸까. 결혼한 사서의 아이일까?, 아니면 모두가 바빠서 아이가 들어오는 걸 못 본건가.
“아저씨야 말로 누구야?”
아, 아저씨라니 아직 청년도 안 된 19세라고. 어린애 눈은 정확하다는 말이 떠올라 가슴이 아파온다. 요즘 피곤한 일이 연이어 터지니 피부상태가 나빠졌나. 그래도 아저씨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상태는 아닌데.
“난 스크라이어라고 해.”
“스크라이어 아저씨구나, 난 타카마치 비비오.”
이름을 말할 때 자랑스러움이 느껴진다. 자연스레 어께를 핀 채로 억지로 어른스러운 표정을 짓는 게 꽤 귀엽다. 그런데, 잠깐 타카마치?
“혹시 엄마 이름이 나노하니?”
“응, 마마 이름이 나노하.”
그런가, 나노하가 양녀를 들였었지. 저번에 비비오의 엄마를 찾아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아이의 사진과 인적사항을 건네받았었지만 그 때 사진 속 무표정한 얼굴과 지금 눈앞의 생기발랄한 얼굴에 괴리가 있어 쉽게 누군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기는 어쩐 일이니?”
나노하랑 같이 왔을까?
“오늘 학교 현장학습.”
“아 오늘이 그날이었지”
사람들이 무한서고를 정보기관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연히 이곳은 서고다. 아이들이 읽을 만한 동화책이나 어른들이 읽을 수 있는 소설책 종류도 수없이 많다. 그래서 무한서고의 정리가 어느정도된 이후에는 무한서고의 문을 개방하고 있다. 덕분에 관리국 내의 학교들은 정기적으로 학생들의 독서 의식을 함양하고자 무한서고로 견학오고 있다.
“그런데 여긴 동화책 구역이 아닌데?”
여기는 통제구역. 견학이 허락된 곳은 다른 곳인데, 역시 길을 잃어버린걸까.
“아니야?”
“응, 비비오가 길을 잃어버린 것 같네.”
“우~, 비비오 길 안 잃어먹었어.”
억울한 표정을 짓는 비비오. 길을 잃어버린 아이는 길을 잃어도 자신은 절대 길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하는 데 이 아이도 마찬가지구나.
“그래?, 그럼 같이 온 선생님이나 안내사서 언니는 어디 있니?”
다소 가혹하긴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가르쳐줘야겠다.
“우~, 선생님은 가버렸고 사서 언니는……”
말을 못 잇는 비비오. 갑자기 비비오의 표정이 변하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이런 울려버린건가.
“후아앙~”
“울지마, 비비오.”
이런 아이 달래는 재주는 없는데.
“비, 비비오. 길 잃어버린 거야?”
비비오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으응, 그럴지도”
아차!
“후아앙~, 하, 하지만 마마가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지 말랬단말야.”
나노하 말을 따른 거라면 분명히 잘한 일이긴 하지만……, 비비오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지 소매로 닦아보지만 역부족이다. 울고 있는 비비오를 안고 토닥거린다.
“그래, 비비오는 잘못한 거 없어. 그러니까 울지마.”
길을 잃은 걸 깨닫게 해주고 훈계 해주려고 했지만 일단 달래기 위해 토닥거린다. 에휴, 갑자기 웬 날벼락이래.
“하, 하지만 비비오 길 잃어버렸는걸.”
불안한 목소리. 그래도 조금은 진정이 됐나.
“괜찮아, 아저씨가 있으니까. 아저씨는 비비오의 마마랑 아는 사이야.”
“정말?”
“응, 정말.”
비비오의 흐르던 눈물이 멈춘다. 아직 히끅히끅 딸꾹질은 하지만 그래도 안정되었으니 다행이다. 완전히 진정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 그렇지!
“아저씨랑 같이 동화책 찾을래?”
내 입으로 아저씨라고 말하니 상당히 기분이 묘하지만 애써 웃는 얼굴로 말한다.
“하, 하지만 마마가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가지 말랬어.”
“그치만 아저씨는 마마랑 아는 사이인데?”
“우……, 그럼 같이 찾을래!”
아직 눈물이 맺혀있는 얼굴로 고민하다가 해맑게 웃으며 승낙하는 비비오. 거짓말한 건 아니지만 조금 씁쓸하다. 납치당하는 아이가 가장 쉽게 당하는 멘트가 납치범의 이런 거짓말인데……, 나노하 아이 교육 시키려면 제대로 해야지. 역시 혼자 아이를 키우면 이런 건 어쩔 수 없는 걸까.
“그럼 어디 동화책 한번 찾아볼까”
원래는 동화책 구역으로 가야하지만 사서장이라는 자리는 그냥 얻은 게 아니다. 제자리에서 손가락을 까닥여 검색마법을 활성화 시킨다. 검색 단어는 동화책, 검색구역은 동화책 구역으로 설정하고 적정 연령대를 입력한다. 검색 결과가 나온 책 중 눈에 익은 것들을 클릭한다.
“우아~!”
창공을 가로지르는 새처럼 동화책이 날아오늘 것을 보고 비비오가 탄성을 지른다. 확실히 수 십권의 책이 날아오는 장면은 처음 보는 사람에겐 장관이겠지. 사서들에겐 끔직한 장면이지만.
“여기 중에 한번 골라보렴”
“정말 여기서 골라도 돼?”
“물론이지.”
“알았어!”
비비오는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눈을 빛내며 책들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아, 여기 있는 건 대출이 안 되는 것도 있으니까 오늘 볼 수 있는 것만 골라야 된다.”
“우……”
수많은 보물 중 가장 귀중한 하나만 고르라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비비오는 수많은 책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고르기 시작한다. 대출해도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으니 그냥 대출 해줄까. 비비오는 삼십분 가량 책을 고르더니 한 손에 한권씩 잡고 무엇을 읽을 지 고민한다. 그냥 두 권 다 읽어도 될 텐데……. 어디 뭘 골랐는지 한번 봐볼까.
“비비오 뭘 골랐어?”
“이거!”
"호오~, 무지 재미있는 동화들이네."
비비오가 고른 건 신데렐라와 다른 차원의 유명한 동화책.
“학교 친구들이 재미있데!”
나 잘했지 하는 표정을 짓는 비비오. 순간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버렸다.
“헤헤”
“아저씨가 골라줄까?”
“응!”
“흠……, 아저씨는 신데렐라가 더 좋을 것 같다.”
“신데렐라?, 하지만 애들은 이게 더 재미있다고 했어.”
“물론 그것도 재미있지만 이 신데렐라는 비비오의 마마 세계의 동화야.”
“나노하 마마의?”
“그래. 나노하도 이거 보고 자랐을걸?”
“그럼 비비오도 신데렐라 볼래.”
비비오는 들고 있던 다른 동화를 놓고 가장 소중한 보물을 찾은 사람처럼 신데렐라를 꼭 껴안는다.
“그래, 그럼 아저씨는 이제부터 일할테니까. 비비오는 아저씨 근처에서 읽어야 된다.”
“응!”
“스크라이어 아저씨!”
요청받은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데 비비오가 부른다. 벌써 동화책을 다 읽었나?
“왜 그러니?”
“이 글자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어디 볼까.”
비비오의 등 뒤로 다가가 아이를 껴안는 동시에 동화책을 잡는다.
“헤헤”
비비오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기 볼로 내 얼굴을 비빈다. 기분은 좋지만 이거 좀 부끄럽네.
“비비오 어느 글자를 모르겠어?”
“이거.”
비비오는 자그마한 손가락을 글자를 가리켰다. 확실히 좀 어려운 글자네. 이런 글자는 적절한 다른 단어로 바꿔줘야 하는 데 번역자가 번역을 잘 못했다.
“이건 호박마차라는 단어야.”
“호박마차?”
“그래. 호박이라는 채소로 마법사가 마차를 만들어준거지.”
“호박으로 된 마차……”
비비오의 눈이 황홀하게 변한다. 이거 나쁜 예감이 드는데.
“스크라이어 아저씨, 마법사는 마도사를 말하는거지?”
“응, 그렇지.”
“오늘 집에 가서 마마한테 만들어 달라고 해야지.”
“…………”
“스크라이어 아저씨?”
“응?”
“무슨 생각해?”
“아무것도”
차마 비비오에게 나노하한테 그런 부탁은 하지 말아달라고 할 수 없다. 나노하, 비비오의 순수함이 깨지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해봐. 도와달라면 나도 도와줄게.
꾸르륵.
귀여운 배꼽 시계 소리. 내 배에서 나오는 소리는 아닌데.
“배고파”
역시나
“비비오 도시락 안 가지고 왔어?”
“응!”
애가 현장학습이면 도시락을 싸줘야 할 거 아냐. 약간 화가 나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 나노하에게 전화하고 싶지만 일단은 애가 먼저다.
“아저씨랑 같이 점심 먹으러 갈까?”
“응!”
“그럼 식당으로 같이 가자.”
“네?, 현장학습이요?”
비비오를 데리러 왔지만 본 건 빈 교실. 먼저 끝난 건가 해서 둘러보니 아예 한 학년 전체가 없다. 급하게 교무실로 가다가 샷하씨를 만나 질문했더니 현장학습이랜다.
“네, 못 들으셨어요?”
“네.”
“이상하다. 저번 주에 발송한 주간 계획표에 오늘은 무한서고에 간다고 쓰여 있을 텐데요.”
“주말에 비비오가 애들이랑 놀다가 잃어버렸거든요. 그래서 오늘 하나 더 받아오라고 시켰는데……”
“이런, 그럼 도시락도 못 싸주셨겠네요.”
“네……”
그냥 다음 주에 하나 받아오면 된다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런 큰일이 생기다니. 점심을 굶고 있을 비비오를 생각하니 애가 탄다. 어떻하지.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비비오가 학급 내에서 인기 있으니 애들이랑 나눠먹을 거예요.”
“하지만……”
“정 걱정되시면 무한서고로 가보세요.”
“네?”
“무한서고로 가보시라고요. 무한서고야 매일 열려 있으니까요.”
“하, 하지만 유노군 바쁠테고……”
“스크라이어 선생님이요?, 제 말은 선생님과 만나보시란 게 아니라 그냥 서고로 가보라고 말한건데요.”
“……………”
나 정말 중증이구나.
“그럼 가볼게요.”
샷하씨에게 인사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어차피 오늘 유노군과 만나보려고 했지만 너무 빨리 만나는 거 아닐까, 조금 치장하고 만나는 게 좋으려나. 하지만 비비오가 점심을 굶고 있을 텐데. 아 정말, 하필 오늘이 현장학습인거야!, 에휴, 지금은 비비오가 중요하니까 무한서고로 가자!.
“비비오는 어린이 세트 먹을거지?”
점심때가 조금 지나 한적한 식당. 곳곳에서 잡담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이정도 소리야 신경쓰이지 않는다.
“비비오, 어린애 아냐, 정식 세트 먹을거야.”
비비오가 심통이 났는지 볼을 부풀린다. 그렇게 귀여운 표정을 짓는데 누가 아이라고 안하겠니.
“그래?, 어린이 세트에는 푸딩도 있는 데, 비비오는 푸딩 안 좋아해?”
“푸딩?”
“응, 관리국 식당 푸딩이 맛있기로 소문났어”
“우……”
고개를 숙이고 고민하기 시작하는 비비오. 힐끔힐끔 어린이 세트 샘플을 훔쳐본다. 귀엽긴 한데 빨리 좀 골라주렴. 뒤에서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기 시작하니 좀 부담스럽다. 애랑 같이 와서 그런가. 사서장과 아이, 의심받을 조합이긴 하니까.
“어린이 세트 먹을래!”
“OK, 정식세트 A하고 어린이 세트 주세요.”
서둘러 음식을 받고 비비오를 데리고 자리에 앉는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이쪽을 보고 수군거리고 있다. 아이가 완전히 어린 것도 아닌 데 그렇게 수상한가……, 그냥 신경 끄고 밥 먹자.
“유노?”
밥을 먹고 있는 데 충격적인 소리를 들었다.
“응, 유노. 마마는 그 사람이 파파가 되어주길 원하나봐.”
평범한 학생이 갑자기 반장 추천을 받은 것 같은 당혹감에 정신이 멍해진다. 나노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약간 미소가 지어진다. 당혹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기쁘다. 나노하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서 기쁘고, 만약 파파가 된다면 이런 귀여운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서 기쁘다. 하지만
파파가 될 생각은 없다.
“스크라이어 아저씨?”
너무 생각을 오래했는지 비비오가 부른다.
“으응, 그래서 비비오도 그 사람이 파파가 되어주길 원해?”
“비비오는 싫어.”
아 조금 상처받았다. 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단번에 이런 소리를 들으니 좀 충격이다.
“왜 싫어?”
“마마가 원하는 사람이어도 비비오는 모르는 사람이니까.”
단순 명쾌한 답.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자신의 부모가 되는 건 누구나가 꺼려지겠지. 할 말을 다했는지 비비오는 어린이 세트를 먹기 시작한다. 도토리를 입 속에 저장하려는 다람쥐처럼 돈까스를 한 입에 넣는다. 볼에 홍조가 피는 게 퍽 맛있나보다.
“어, 사서장님~”
비비오의 귀여운 모습을 감상하고 있는 데 불청객이 날라들었다.
“사서 A군, 여긴 웬일이야?”
“사서장님마저 사서 A라고 하시는 겁니까……, 식당엔 당연히 밥 먹으러 왔죠.”
능글맞은 웃음을 말하는 녀석. 별명은 사서 A, 어떤 사서 하나가 지어준 별명 아닌 별명인데, 어느새 주위 사서들이 이 녀석을 사서 A라고 부르기 시작하더니 요즘엔 거의 고유명사화 되었다. 근데 너도 널 사서 A라고 부르잖아.
“사서 A, 이름 웃기다.”
배시시 웃는 비비오.
“어라?”
사서 A는 그제야 비비오를 발견했는지 비비오를 유심히 관찰한다. 금발의 오드아이, 통통한 볼살, 앙증맞은 입술엔 아까 먹은 돈까스 소스가 양 묻어있다. 이런 닦아줘야겠네. 주머니에서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꺼내 비비오의 입을 닦아준다.
“오!”
그러자 사서 A는 더욱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비비오를 바라본다. 너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냐. 이제는 내 얼굴도 유심히 쳐다본다. 그리고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설마 이 녀석 말도 안돼는 오해를……
“사서장님 언제부터……”
“무엇을 생각하든 자네 오해야.”
“상대는 누굽니까?”
“오해라니까!”
이런 언성이 높아져 버렸다. 조용해졌던 사람들이 다시 이 쪽을 보며 수근거린다.
“하하, 농담이에요.”
전혀 농담으로 안 말한 것 같은데. 거기다가 당하는 사람은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근데 누구 애입니까?”
“친구 애”
“누구의?”
“나노하라고.”
“아!, 에이스 오브 에이스요.”
사서 A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JS 사건이야 워낙 유명한 사건이기도 하고 그 사건 이후로 나노하가 양녀를 들였다는 사실도 꽤 유명한 사실이니까. 사서 A는 이제 다른 의미로 비비오를 유심히 쳐다본다.
“우……"
비비오는 동물원의 동물이 된 심정이었는지 조금 괴로워했다.
“사서 A군”
“하하, 아가씨 너무 쳐다봐서 미안, 근데 정말 닮았네요.”
“동감이야.”
맨 처음 봤을 때 조금 놀란 건 사실이다. 금발의 초록색 눈, JS가 내 유전자를 가지고 애를 만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았다. 확실히 이 정도라면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의심할 만 하겠지.
“혹시, 양녀는 거짓이고 사실은……, 컥!”
분노의 팔꿈치 찍기.
“헤헤”
비비오는 뭐가 재미있는 지 웃는다. 이런, 애 교육상 안 좋은 장면이었는데
“사서장님 너무해요.”
“뭐가 너무해.”
“솔직히 사실 같잖아요. 누구나 의심할꺼라구요. 비비오 아가씨, 말해봐. 사실 사서장님이 아가씨 아빠지?”
이 녀석 매가 부족하구나.
“아니, 아저씨는 비비오의 파파가 아니야.”
“칫”
뭐가 칫이야, 그게 분하냐.
“그래도……”
“그래도?”
“아저씨같은 사람이 파파였음 좋겠다.”
배시시 웃는 비비오. 아 정신이 조금 멍해졌다.
“호오~, 이거 얼마있으면 사서 전체가 국수 먹을 수 있겠네요.”
“헛소리 하지 말고, 맡겼던 일은 끝냈어?, 그거 오늘 저녁까지 끝내야된다.”
“알고있습니다~, 여기 음료수나 드세요. 전 이만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사서 A는 주머니에서 음료수 캔을 2개 꺼내 탁자 위에 놓고는 출구로 가버렸다. 빨리 가라, 이 재앙 덩어리야.
“아~, 사서장님!”
출구에서 소리 높여 부르는 사서 A. 무슨 짓이야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청첩장은 꼭 주셔야 됩니다!”
난 음료수 캔을 전력투구로 출구를 향해 던졌다.
“재미있는 오빠였다.”
재……,재미있었니. 아니 그것보다 왜 저 녀석은 오빠인데, 난 아저씨야. 나이는 저 녀석이 한 살 많다고. 비비오는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남은 음료수 캔을 깐다. 홀짝거리며 마시는 게 꼭 고양이가 물 마시는 것 같다.
“아저씨도 마실래?”
바라보는 시선이 자신이 아니라 음료수라고 생각했나, 아이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으니 받아 마신다.
“간접키스다!”
“푸~~~”
“아저씨, 더러워.”
입에 들어간 음료수가 분수처럼 분사된다. 애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비비오, 지금 뭐라고?”
“간접키스. 아저씨랑 나랑 간접키스했다.”
“그런 건 어디서 배우는 거야.”
“학교에서.”
요즘 학교는 도대체 뭘 가르치는거야. 언제 시간나면 성왕교회의 교육 과정이 어떤 지 확인해 봐야겠다. 아니, 관리 감찰까지 해서 꼭 문제점을 찾아내고야 만다.
“아저씨?”
“응?”
“비비오 이제 동화책 읽으러가고 싶어.”
“이제 그만 애들이랑 집에 가야되지 않나?”
손목시계를 보니 벌써 식당에 온지 한 시간이 경과했다. 선생들이야 오전에 안내 사서들에게 애들을 맡기고 갔겠지만 이제 안내 사서들도 슬슬 업무 종료할 시간이다.
“집에 가야 되는 거야?”
비비오는 가장 타고 싶은 놀이기구 앞에서 그만 가야된다는 말을 들은 아이처럼 나를 쳐다본다. 이 눈빛은 반칙인데.
“뭐 괜찮을려나.”
“괜찮아?”
“그래.”
“아저씨!, 고마워!”
비비오가 의자에서 일어나 나를 꼬옥 안는다. 이런이런, 안내 사서들에겐 미리 연락해놔야겠네.
사서장 실의 문이 열린다.
서류의 산, 책의 바다. 사서장실은 작은 무한서고를 이루고 있다. 천장과 대화를 나눌 듯 가까이 붙어 있는 책장은 책들의 무게 때문에 무너질 듯 서 있고 각종 서류는 책상이라고 겨우 알아차릴만한 것 위에 쌓여있다. 사서장실인데도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다. 책에게 햇빛은 독약이니까 일부러 잘 들지 않게 만들었다고 한다. 약간 습합 종이 냄새와 잉크 내음. 미약하게 곰팡이 냄새가 나긴 하지만 나같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더 없이 좋은 향기다. 폐 속 깊숙이 책의 향기를 음미하니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곰팡이 냄새나.”
윽, 내가 좋아하는 냄새를 정면에서 부정당하다니. 확실히 요 며칠 정리를 안 해놔서 환기가 안 되다보니 곰팡이 냄새가 조금 심하게 나긴 한다.
“비비오, 잠시 문 밖에 있어줄래?, 금방 청소할게.”
비비오의 대답을 듣고 청소를 시작한다. 쓸모없는 자료는 휴지통에 버리면 되지만 중요한 서류나 서적이 많기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 건 가벼운 정리 뿐. 나중에 섞인 자료를 분류하려면 고생하겠지만 그냥 구별하지 않고 서류를 쌓는다. 분류작업은 사서 A한테 맡겨야지. 20분정도 정리하니 조금은 깨끗해졌다. 아, 그러고 보니 책장에 동화책이 있었지, 아까 신데렐라도 거의 다 읽은 것 같았으니 다 보면 이거 보여줘야겠네.
“비비오~, 이제 그만 들어와도 돼”
“응!”
기운차제 들어와 쇼파에 털썩 앉는 비비오. 책장에서 꺼낸 동화책을 비비오에게 건네고 난 책상에 앉는다. 그러고보니 오늘까지 결제할 서류가 좀 있었다.
“아저씨!”
서류 더미 속에서 서류를 찾고 있는 데 비비오가 동화책을 양손에 안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응?”
“아저씨 바빠?”
“그렇게 바쁜 편은 아닌데……, 왜?”
서류 더미에서 서류를 찾았다. 역시 분량이 조금 되긴 하지만 부담되는 정도는 아니네. 서류를 책상에 올려놓자, 비비오가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왜 그러는 걸까.
“정말?”
“응. 정말”
“그럼……, 동화책 읽어줄 수 있어?”
그런거였나. 생각해보니 내 일을 하느라 동화책 한번 안 읽어줬지. 비비오는 내 침묵이 불안했는지 길가의 버려진 새끼 강하지 같은 표정으로 쳐다본다. 뭐, 아직 여유는 있으니까.
“물론이지, 어떤 걸 읽어줄까?”
“그럼, 신데렐라 읽어줘!”
비비오는 책을 들고 폴짝 뛰어 내 무릎에 착지한다. 애라 해도 무시할 수 없는 무게다보니 조금 아프다. 아픔을 참고 신데렐라 첫 페이지를 편다. 그러자 비비오가 한 손을 위로 내 볼을 쓰다듬는다.
“아저씨, 볼 역시 부드럽다.”
네 볼이 훨씬 부드럽단다. 어른이 아무리 관리해봤자 천연을 이길 수 없으니까. 비비오가 계속 볼을 만지니 조금 부끄럽다.
“이제 읽어줄게”
“응!”
나는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쿠~~”
벌써 잠들었나. 점심 먹고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 건 어른에게도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이 읽어달라고 한 건데……, 좋은 수면제가 된 것 같다.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어 자고 있는 비비오의 묵직한 무게가 느껴진다. 이게 순수의 무게일까. 다리는 저리지만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나노하 행복하겠네. 잠든 비비오가 깨지 않게 조심히 들어 쇼파로 옮겨 눕힌다.
참 행복하게도 잔다.
누군가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찾고 싶다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난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라고 말할 것이다, 때묻지 않은 순수, 성악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고는 입이 다물어지리라. 어머니 배 속에 있는 태아처럼 비비오가 몸을 웅크린다. 조금 춥나, 한쪽 구석에 포개어 놨던 담요를 덮어준다.
“헤헤”
잠꼬대를 하는 건지 비비오가 자신의 머리를 기분 좋게 쓰다듬는다. 동화책을 읽어주니까 내용 질문하는 게 너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그것이 상당히 기분 좋았던 듯하다. 정말로 사랑스럽다, 그리고 너무도 신비하다.
신비함
언제나 아이의 자는 얼굴을 볼 때마다 난 자연의 경이로움에 빠진 여행자가 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내가 어렸을 적, 스크라이어 부족의 일원으로서 방랑 생활을 하던 때에는 이런 얼굴을 보지 못했다. 물론 나 같은 어린 아이가 없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수가 적은 편이었고 방랑 민족이었기에 한 사람이라도 인력이 더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은 우리들이 하루빨리 세상을 배우도록 열심히 가르쳤고 우리고 또한 하루 빨리 한사람 몫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가끔 동년배 아이들의 자는 얼굴을 볼 기회가 있었지만 난 아이와 어른의 자는 얼굴의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었다. 너무도 빨리 어른이 된 우리는 너무도 빨리 순수의 자연에서 쫓겨나 버린 것이다.
물론 그것을 원망하고 있는 건 아니다. 험난한 방랑생활을 위해선 정신이라도 빨리 어른이 될 필요가 있었고 그 덕분에 이렇게 무한서고 사서장이 될 수 있었으니까. 단지 아이의 자는 얼굴을 볼 때마다 신비로울 뿐이다. 순수에 대한 경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신비함. 익숙하지 않은……,
익숙하지 않아?, 아니다. 난 이 얼굴이 신비롭기는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익숙하다. 왜 익숙하지?, 당혹감이 심장을 깊숙이 찌른다. 분명히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본 건 부족 생활을 한 때가 전부인데, 사서가 되고 나서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기란 요원한 일이었던 지라 익숙하지 않아야 할 텐데. 어째서 이 얼굴이 익숙한 걸까. 어째서……
아 그녀다.
아무 걱정도 고민도 없이 행복하게 잠든 모습이 그 때의 그녀와 닮았다. 그녀의, 나노하의 자는 모습과 같다. 의문의 사건에 휘말려 귀찮을 법도 걱정될 법도 하지만 너무도 편히 자던 그녀. 이 차원의 사람들에게 크나큰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고민하면서 잠 못 이루던 밤에 본 그녀의 얼굴은 나에게 있어서 컬쳐쇼크였다.
어떻게 이렇게 고민없이 잘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렇게 걱정없이 잘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렇게 행복하게 잘 수 있을까.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가진 걱정마저 사라질 것 같았다. 나도 이렇게 잘 수 있을까?, 붙임성이 별로 없던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 것도 그런 궁금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를, 나노하를 알아갈 수록 그녀는 더욱더 신비로웠고 놀라웠다.
새로운 세상을 배우나가는 나그네같이 그녀를 알아가는 것 하나하나가 즐거웠다. 그리고 나노하를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우물 안의 개구리가 하늘을 동경하듯 나는 그녀라는 세상을 동경하게 되었다.
아무 대가 없이 남을 도와주는 그녀를 동경했다.
아무 상관없는 아이를 도와주려는 그녀를 동경했다.
아무 렇지않게 적과 친구가 되는 그녀를 동경했다.
아무렇지 않게 괴로운 일을 웃어 넘기는 그녀를 동경했다.
아아, 난 정말 찬란한 태양과 같은 그녀를 동경했다.
어린아이의 동경. 이미 어른이 된 줄 알았던 나에게 찾아온 어린아이의 감정. 부모님이나 tv 스타를 동경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나는 나노하를 동경했다. 정말로 그녀를 동경했다. 너무도 그녀를 동경했다. 그래서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동경하기에 사랑한다, 사랑하기에 동경한다. 동경과 사랑은 종이 한 장차이의 감정. 하지만 어른인 척하는 어린 아이인 나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아니 깨닫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태양을 동경해 날아가는 이카루스였기에 내 날개가 동경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걸 깨닫는 날에는 떨어져 버릴 것 같았다.
왜 나중에야 깨달은 걸까.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왜 아직도 못 깨달은 걸까. 그녀에 대한 나의 주된 감정이 동경인지 사랑인지.
설령 나노하의 마음을 알지라도 그녀의 애인이 될 수 없다. 나노하 혼자 버겁다는 걸 알지라도 비비오의 파파가 될 수 없다. 내 자신의 마음조차 확실히 구별 못하는 데 어떻게 그녀와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우습다. 유노 스크라이어야. 이 바보같은 자식아.
“유노군?”
태양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노군, 비비오도 있네!”
안내 사서의 말을 듣고 찾아온 사서장실. 비비오가 유노군과 같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금 당황했지만 서둘러 사서장실로 향했다. 사서장 실의 문을 열자 쇼파에 앉아 있는 유노군과 잠들어 있는 비비오가 보인다.
“나, 나노하?”
유노군이 황급히 눈가를 닦고 일어난다. 유노군, 울고 있었어?
“유노군, 울었던 거야?”
“아, 아니야. 안에 워낙 먼지가 많다보니”
멋쩍게 웃는 유노군. 전혀 그렇게 아닌 거 같은데……,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걸까. 가슴 한 쪽이 져며온다.
“여기 앉아.”
유노군이 옆자리에 앉도록 권한다. 걱정되는 마음을 숨기며 그의 옆자리에 앉는다.
“무슨 일로 온거야?”
“비비오 때문에……”
“역시 그런가.”
자기 때문에 오길 바랬을까. 그걸 바랬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
“응, 깜빡하고 도시락을 못 챙겨줘서 걱정이 되더라고”
“점심이라면 내가 사줬어.”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비비오 다행히 안 굶었구나. 새근새근 잠든 비비오의 얼굴을 바라본다. 비비오 신경 못 써줘서 정말 미안해.
“다음부터는 신경써서 챙겨줘.”
“응,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일 없게 할게. 근데 유노군 왜……, 울고 있었어?”
조심히 화제를 돌린다. 왜 울고 있었을까. 오랜 시간 유노군을 알고 지냈지만 유노군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처음 봤다. 언제나 강한 그가 왜 눈물을 흘렸을까.
“비비오, 귀엽지?”
“응?”
유노군은 내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비비오를 가만히 쳐다본다. 역시 말하기 싫은거야?, 난 유노군의 슬픔을 알면 안돼는거야?
“나노하도 이랬어.”
“내가?”
“응. 정말 꼭 닮았어.”
“우~~, 언제 자는 얼굴을 본 거야.”
무방비한 상태를 남자에게, 유노군에게 보여지다니. 얼굴에 피가 몰린다.
“10년 전에”
“아……”
“그 때 나노하는 정말 행복하게 잤다. 보는 사람이 전혀 안 질릴 정도로”
눈물진 유노군의 얼굴에 미소가 걸린다.
“우……”
얼굴이 화끈거린다. 애정 어린 표정을 짓는 유노군을 보고 있으니 심장이 방망이질 친다. 이, 이거 혹시 찬스일지도.
“유노군. 저, 저……”
“그래서 울었어.”
“응?”
“옛날일이 그립고도 애절해서 울었어.”
비비오를 바라보던 유노군이 날 쳐다본다. 아직 마르지 않은 채 날 바라보고 있는 눈과 이제껏 본 적 없는 종류의 유노군의 미소가 어우려져 전혀 다른 유노군을 보는 것 같다. 아찔하다. 머리가 새하애진다. 그래, 고백하자,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하겠어.
“유노군!”
“응?”
“저…저기”
유노군의 두 손을 꼭 붙잡는다. 하야테, 페이트 용기를, 용기를 나눠줘!
“왜그래 나노하?”
“비비오의 파파가 되어줘!!”
두 눈을 꼭 감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결국 저질렀다. 유노군이 뭐라고 대답할까. 거절할까?, 그건 안돼!, 정말 그러면 안돼는데, 유노군~, 유노군~ 제발!
내 앞에 떨고 있는 소녀가 있다. 불안, 걱정에 떨고 있는 소녀가 있다. 가녀린 어께를 잔뜩 웅크린 채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소녀가 있다. 태양처럼 빛나고 있는 게 아니다. 나와 같은 사람, 내가 동경했던 그녀가 아니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나노하다.
나를 방금 전까지 괴롭히고 있던 날개가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날개를 잃은 상실삼이 덮쳐온다. 그리고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 따스한 무언가가 상실감을 메꿔간다. 아, 나노하 역시 넌 나의…
“알았어, 비비오의 파파가 될게”
“유노군!”
나노하의 눈이 활짝 펴진다. 얼굴에는 홍조가 펴져있다. 나노하의 얼굴이 웃을 것 같기도 울을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바뀌어져간다. 갑자기 조금 장난 치고 싶어졌다.
“그런데……”
순간 정지하는 나노하.
“걱정하지는 마, 나노하에게 애인이 생기면 파파 자리에서 확실히 물러 나줄게.”
나노하의 얼굴이 굳어진다. 웃을 것 같기도 울을 것 같기도 한 표정이 금새 울려는 표정으로 바뀐다. 정말 믿은건가.
“그럴리 없잖아.”
손가락을 튕겨 나노하의 이마를 살짝 때린다. 동경하던 그녀에게 도저히 할 수 없던 행동.
“응?”
이마를 감싸며 말하는 나노하.
“좋아하는 여자에게 남자가 생겼다고 가만히 물러날 남자가 어디있어”
내 말을 이해 못하는 나노하. 순간 멍해있더니 눈물을 터트린다.
“유노군~~!”
“와앗!”
나노하가 앉은 자리에서 날아와 날 안는다.
“유노군, 유노군, 유노군, 유노군!”
“그래, 나노하.”
나도 나노하를 안는다.
“정말 좋아해. 정말로 좋아해.”
“나도 사랑해”
나노하의 온기가 느껴진다. 날개 잃은 상처를 보듬어주듯이
나노하의 심장소리가 들린다. 남아있는 불안마저 잠재우는 소리
나노하 역시 넌 나의 태양이 아니었어, 넌……
“정말 사랑해 나노하”
넌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여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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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풍월객의 유나노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은 작품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과는 여러분이 평가해주셔야겠네요.
제가 팬픽을 쓰기 시작한지 거의 6개월이 흘렀습니다. 이번이 일창게 10번째 팬픽이군요. 여지껏 유노메인 팬픽을 10개를 썼지만 정작 제대로된 유노x나노하물 쓴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폭주편을 한편에 놔둔 채 유노x나노하 물을 써봤습니다. 초반에 개그스럽게 나가다 분위기 급반전이 된건 너그럽게 용서를 ^^;
동경과 사랑은 종이 한 장 차이.
비비오와 유노의 만남과 가족이 되는 간단한 플롯을 가진 이번 팬픽에 주 모토였습니다. TV 스타는 동경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부모님은 누구나 동경해봤을 겁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부모님도 인간인 것과 자신이 부모님을 동경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 우리는 부모님을 동경하면서 동시에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 팬픽에서 유노는 나노하를 동경했습니다. 사랑하는 감정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요. ^^; 그것 때문에 방황하고 있는 유노를 각성시켜주는 건 역시 나노하겠죠. 유노의 깨달음을 좀 더 극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싶었는데 조금 불만족스럽습니다.
정말 이럴 때 전 필력도 묘사력도 딸리는 글쟁이에 불과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OTL 이제부터는 15kb에 연연하지 말고 잦은 습작을 해야겠습니다. ^^;
ps. 에필로그는 며칠 후에 블로그에 올리겠습니다.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스 리리컬 동맹단 가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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