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시공 관리국 무한서고
지금 이 단어를 본 사람이라면 이 단어를 보고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수많은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현 무한서고 사서장인 나, 극한의 업무량, 워커홀릭의 집합소, 국원들의 무덤등 그리 좋지 않은 것들이 말이다. 사실 이러한 소문의 출처의 대부분은 무한서고에서 전출간 사서들이나 무한서고에 견학 왔던 사람들이다. 이 소문의 근원에는 그들이 보거나 체험한 무한서고가 있기 때문에 소문이라고 해서 내가 이 소문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외부인이 본 무한서고란 객관적일 수도 있지만 주관적인 해석이 다분히 들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인이 아니라 내부인, 그것도 현 무한서고 사서장인 나 유노 스크라이어의 말을 들어보는 게 좋지 않겠는가. 물론 내가 내부인이기 때문에 무한서고를 옹호하는 발언을 할 지 모른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기존의 무한서고에 대한 소문과 비교해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기존에 있는 소문은 무한서고의 ‘일’이 중심일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부터 설명하는 무한서고의 모습은 사서들의 ‘일’보다는 사서들의 ‘심리적인’ 측면, 그러니까 사서들의 심리적인 변화를 중심으로 설명하겠다. 무한서고에 들어오는 사서들은 그들이 끝까지 무한서고에 남을 경우 총 4번의 심리변화를 가지게 된다.
1. 충격기
처음 배정받는 곳이 무한서고인 국원, 혹은 전출발령 받은 곳이 무한서고인 국원들은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나는 이러한 심리상태를 충격기라 명명하겠다. 그들은 기존에 들었던 무한서고의 소문. 절대로 긍정적일 리 없는 그 소문을 익히 들어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처음 배정받을 곳이든 아니면 전출 발령 받을 곳이든 절대로 무한서고만은 원치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받은 발령장에는 ‘무한서고’라고 쓰여 있다. 이 때 이들은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시험을 매우 못 봐서 이런 곳에 배정받은 게 아닌 지, 기존 직장에서 자신의 상사에게 밉보인 게 아닌지 생각하거나 자신이 기존 직장에서 너무 나태하게 지냈었나 하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 이야기 하지만 사서의 자격은 ‘쓰레기’가 아니다. 무한 서고의 자격은 엄연히 검색마법에 재능이 있고 독서 마법에 특출하며 멀티태스킹도 가능한 ‘엘리트’이다. 각 부서에서 무한 서고로부터 전출 요구서를 받게 되면 사서로서의 재능이 필요한 부서일 경우, ‘엘리트’는 보내주지 않긴 하지만 적절한 국원을 보내주며 사서로서의 재능이 필요하지 않은 부서에서는 사서로서 재능이 있는 ‘엘리트’를 보내준다. 그리고 첫 직장이 무한서고인 국원은 그 해 시험에서 사서의 재능부면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보고서를 읽는 이라면 무한서고 사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접길 바란다.
아무튼, 이렇게 발령받은 사서들은 수많은 생각을 하지만 그 끝에 생각은 보통 하나로 귀결된다.
‘난 죽었다.’
1-1
면제 심리
충격기에 가지게 되는 심리 중 대표적인 것에는 면제 심리가 있다. 대부분의 국원들이 무한서고 문을 두드리는 그 순간까지 그들은 이 심리를 가지고 있다. 이 심리란 자신이 최후의 순간에 무한 서고 근무를 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믿음이다. 어린아이들이 부모님에게 매를 맞기 직전까지 ‘난 용서받을 거야’라는 심리와 비슷하다. 이런 심리를 가지는 국원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이 믿음에 의지한 채 현실에서 도망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서고 내의 업무능률이 매우 떨어진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그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하지만 본인이 스스로 그것을 깨닫기란 매우 요원한 일이다. 때문에 그 일은 알프와 같이 무한서고 고참 사서들이 나서서 해주게 된다.
“어서 오세요~!”
발령받은 국원들과 처음만나는 것은 무한서고에 상당히 오래 근무한 사서들이다. 이들은 국원들과 미소로 인사하며 그들이 가져온 짐을 손수 옮겨준다. 상당히 활기차고 즐거운 모습. 이 모습을 본 국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생각보다 괜찮은 직장인가 보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안됐어’
‘오~, 로리닷’
‘그래 기왕 배정받았으니까 열심히 하자.’
‘속임수일거야’
‘짐을 옮겨주다니 선배들이 꼬장 안부리나 보네’
그 상황에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생각들과 눈앞에 펼쳐진 밝은 분위기로 인해 면제심리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의도된 상황인지 모르고 말이다.
이렇게 현실을 직시하게 될 때 내가 그들 앞에 나타난다. 아직 내 얼굴을 모르는 국원들이 많긴 하지만 발령받은 곳에 장을 모르는 국원은 없다. 그러므로 내가 나타나면 국원들은 다들 기립자세로 긴장하게 된다.
“긴장 푸세요. 편한 자세로 있으셔도 됩니다.”
환한 미소. 다소 가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국원들과 맨 처음 대면할 때 나는 가급적이면 환한 미소로 대한다. 그리고 이런 환한 미소는 국원들이 편한 자세로 나를 대할 수 있게 한다.
“소문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무한서고에는 확실히 업무가 많습니다.”
다들 다시 긴장.
“하지만 사람 일하는 곳인데 설마 죽기야하겠습니까.”
이런 말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면 다들 긴장하고 소문이 사실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웃으면서 다소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기 때문에 국원들은 이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다행이게도.
“그럼 소속부서를 배정하겠습니다.”
보통 한 번에 무한서고에 배정받아 오는 국원들은 50명 정도. 난 이들을 사전에 조사하고 배정식때에 다시 한 번 유심히 관찰한다. 그리고 이들을 보고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고갯짓을 한다. 내 고갯짓의 방향에 따라 그들의 소속 부서가 달라지는 데 보통 왼쪽그룹이 4/5를 차지한다. 배정이 완료되면 오른쪽 그룹은 나를 따라오고 왼쪽 그룹은 다른 사서들을 따라간다.
“저기 사서장님~”
“무슨 일이지?”
“저기 다른 그룹은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겁니까?”
“발굴작업이네”
“네?”
발굴단, 이 말을 들은 신입 사서는 내 말에 무슨 우회적 의미가 있나 고민한다. 하지만 내 말에 우회적 의미는 없다. 왼쪽 그룹은 말 그대로 ‘발굴’하러 간다. 최근 10년 동안 무한서고는 정리 작업을 했고 대부분의 책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책들은 ‘발굴’해서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 발굴해야 하는 곳은 마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책이 쌓여져 있기 때문에 방심했다간 책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고 마법에 반응하는 위험서적이라든지 마법이 닿으면 불타 없어지는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권 한권 직접 날라서 읽어야한다. 정신노동에 육체노동, 때로는 마법도 써야하기 때문에 무한서고 내에서 가장 힘든 곳이다. 때문에 생존율 0%. 이곳에서 처음 일한 국원들은 전출 신청서를 낼 수 있는 한 달 후에 전출 신청서를 내거나 그 전에 사직서를 낸다.
‘왜 고참 사서들이 이 일을 하지 않느냐?’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일은 누군가 해야 할 꼭 필요한 일이며 이 일을 고참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발굴단은 가능성이 없는 국원들을 잘라버리는 데 의의가 있다. 어중간한 근성, 어중간한 실력 이런 것들을 가진 채 무한서고에 근무하면 결국 나중에는 전출 가버린다. 그러면 고참 사서들이 빠져나가 버리는 것이다. 이럴 바에야 애초에 싹을 잘라버리는 게 좋다. 그렇기 때문에 10년 동안 사람을 선별해 온 내가 직접 나서서 발굴단을 정해주는 것이다.
오른쪽 그룹은 힘들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왼쪽 그룹보다는 덜 힘든 일을 맡긴다. 물론 상대적으로 덜 힘들 뿐 힘든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들도 한 달 뒤 전출 신청서를 낸다. 하지만 ‘절대’ 신청서를 수리해주지 않는다. 오직 수리해주는 것은 ‘사직서’뿐이다.
2. 무감정기.
2-1. 교과서는 틀렸다.
무감정기에 설명하기에 앞서 모든 사서들이 인정하는 이 말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는 교과과정 중에 필수 수면시간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교과서는 인간은 하루에 최소 6시간은 자야한다고 한다. 또한 교과서는 극심한 피로, 제 때 먹지 못하는 식사가 인간의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4일 동안 단 세 시간을 자면서도 일했다. 무한의 업무 때문에 피곤에 쩔지언정 건강했다. 식사를 제 때 먹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건강에 이상은 없었다. 때문에 사서 모두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교과서는 틀렸다.”
2-2. 무감정기.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무감정기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부족한 수면시간, 제때 먹지 못하는 식사, 무한의 업무는 비록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신입 사서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라버린다.
형이상학적인 말이 될지 모르지만 고통이라는 것은 본인이 이것을 ‘고통’이라고 인식했을 때야 비로소 고통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신입 사서들은 본능적으로 이것을 고통이라고 인식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잘라버린다. 기쁨, 슬픔, 사랑, 분노 이런 기초적인 감정을 잘라버림으로 고통 또한 못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무한 서고에서 일을 하게 되면 동료사서가 일을 하다가 기절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직장이라면 동료가 달려가 괜찮냐고 말을 걸어 보기도 하고 의사를 부를 것이다. 하지만 감정을 잘라버린 신입 사서들은 동료가 쓰러져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기절한 사서가 맡고 있던 일을 가지고와 묵묵히 일할 뿐이다.
‘매정하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서장으로서 만약 욕을 한다면 나에게 해라. 하지만 그들을 욕하지 마라. 그들은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무한 서고의 일은 대부분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그런데 만약 한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제 때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 빠르게 일을 인수인계 받고 기절한 사서대신에 일을 마무리한다. 이게 기절한 사서를 위해 할 수 있는 사서들의 최대한의 배려다. 기절한 사서의 문제는 현 관리국 내에서도 가장 인원수가 많은 의료팀, 무한 서고전담 의료팀이 해결하면 된다.
2-3. 분노와 유머.
물론 감정을 잘라버린다는 것이 이들이 감정을 아예 못 느낀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감정의 기복이 매우 줄어드는 것이다. 때문에 이 시기의 사서들도 분노할 줄 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빌어먹을 자식!”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사서, 무감정기의 사서 하나가 고참 사서랑 싸우는 일 발생했다.
“뭐야 이 자식이!”
물론 고참 사서도 같이 주먹질. 무중력 공간에서의 싸움은 생각보다 더 웃기는 일이지만 그래도 본인들은 심각하게 싸웠다.
“그만하세요!”
난 급하게 그들에게 달려가 바인드로 구속했다.
“사서장님”
그들은 바인드에 구속당하자 왜 구속하냐는 듯이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서고 내에서 주먹다짐은 상당히 오랜만이었기에 나는 화가 많이 난 상태로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사실은……”
요지는 이러했다. 고참 사서가 후배에게 개인적인 모멸감을 주는 욕을 해댄 것이다. 가끔 고참 사서들이 일부러 신입 사서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있다. 보통 괴롭히는 방법으로 신입사서의 업무량을 늘려 버리는 데 그렇게 많은 양도 아니기 때문에 나나 다른 고참사서, 신입 사서 모두 그냥 묵인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런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매우 화가 났다.
“둘 다 3개월 감봉입니다. 선배면 선배답게 행동하세요. 그리고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선배에게 주먹질은 하지 말아야죠. 앞으로 그런 일이 있으면 저에게 먼저 말씀해주세요.”
무감정기의 사서를 분노케하는 것은 과도한 업무량도 부족한 수면도 아니다. 개인적인 모멸감인 것이다.
무감정기에 사서들은 의욕을 잃고 사직서를 내는 경우가 많다. 미안한 일이지만 난 이 사직서를 잘 수리해주지 않는다. 충격기에는 애써 골라낸 사서들이 빠져나가는 것은 매우 않좋기 때문에 사직서를 수리해주지 않지만 무감정기에는 다른 이유로 수리하지 않는다. 초창기 내가 아직 사서장인 된 지 얼마 안 된 무렵에 무감정기 상태에 있던 많은 사서들이 사직서를 냈고 난 흔쾌히 수리해주었다. 그리고 결과는 참담했다.
피로 같이 곧 회복할 수 있는 건강 문제는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건 정신. 감정을 잘라내고 채 회복하지 못한 채 사직한 그들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짧게는 6개월 길면 3년. 이성만 있는 인형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깨닫고 나는 그들에게 매우 미안한 감정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이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물신양면으로 도왔다. 그리고 그 일을 교훈삼아 현재는 무감정기에 있는 사서들의 사직서를 받아주지 않는 것이다.
현재 무한서고는 무감정화된 사서들이 빨리 감정을 찾게 해주기 위하여 하루 1인1유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아주 희미한 미소, 즐거움은 감정을 다시 찾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4. 신입 사서들의 꿈
신입 사서들의 보통 기숙사나 무한 서고 내에 잠을 잔다. 그리고 무감정기라 꿈을 안 꿀 것 같은 사서들도 인간인 이상 꿈은 꾼다. 97 관리 외 세계의 프로이트라는 학자는 꿈이 무의식을 반영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입 사서들의 꿈은 주로 무슨 내용일까? 꿈은 개개인 마다 다르겠지만 특이하게도 신입 사서들의 꿈은 비슷하다. 그에 대한 대화를 잠시 보여주겠다.
“사서장님.”
어젯밤에는 집에 돌아가서 잤음에도 피곤에 쩐 신입사서가 나를 불렀다.
“왜 그래?”
“좀 상담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신입사서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나도 하고 있던 업무를 중단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뭐지?”
“꿈말입니다.”
“꿈?”
“네 꿈이요.”
“꿈이 뭐가 어떤데?”
“……, 저기 꿈에서 자는 것도 가능한 겁니까.”
극도의 수면 부족은 그로 하여금 꿈에서조차 자게 한 것이다!
3. 회복기
무감정기에서 사서들은 육체적으로는 무한 서고에 적응했다. 회복기하고 무감정기에 차이점은 정신의 적응문제다. 회복기에 드디어 이들은 잘라냈던 감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3-1. 인간의 고통은 상대적이다.
무한 서고의 사서인 이상 앞서 말한 고난들은 피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사서인 내내 무감정한 상태로 있는 것은 육체 건강이나 정신 건강모두 해롭다. 사실 사서들이 가끔 건강상 나빠지는 것도 환경보다는 이런 정신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에 있다.
사서들은 무감정기에 오래 있다가 어느 순간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늘 업무가 어제의 업무보다 적으며 오늘은 크르노 제독의 호출콜도 없고 어딘가의 마왕이 사서장을 내놓으라고 닦달하지 않는 것에 기뻐하는 법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무감정기에서 회복기에 도달하게 한다.
3-2. 휴가
충격기나 무감정기에 휴가를 준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과 휴가 때 맛본 상황을 비교하고는 휴가가 끝나고 곧바로 사직서를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회복기에는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성숙해졌기 때문에 사직서를 내는 경우는 매우 적다. 때문에 한 사서가 회복기에 들었다고 판단되면 나는 과감히 일주일 휴가를 준다.
병가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휴가를 받은 사서는 일종의 꿈과 같은 심리상태를 가진다. 이것은 첫 휴가를 보내고 온 사서랑 대화이다.
“휴가는 잘 보네고 왔어?”
일주일이라는 긴 휴가를 마친 사서에게 나는 안부겸 인사를 했다.
“놓쳤던 tv프로그램도 다보고, 못 깼던 SRPG 타이틀 3개도 깼고 하루에 15시간씩 잠을 잤습니다.”
모든 사서들이 바라는 일, 옆에서 엿듣던 사서 몇 명이 부러워 죽겠다는 얼굴을 한다.
“그런데 안색이 왜 그래?”
당연히 본인의 얼굴에도 기쁨에 넘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서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런데……”
“……?”
“전혀 기쁘지 않았어요!”
무감정기에 겪었던 고통 때문에 자신이 만끽했던 것들이 모두가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첫 휴가를 보내고 온 사서가 사직서를 낸다면 난 흔쾌히 수리해준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럴 확률은 매우 적으며 이러한 심리는 첫 휴가 때 겪는 공통된 심리이므로 나중에는 당연히 휴가를 즐기게 된다.
3-3. 가학심리.
회복기에 들어선 일부 사서들이 가지게 되는 심리상태 중에 하나가 가학심리다. 잘라낸 감정을 다시 회복한다는 것은 없던 감정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도덕적, 정신적 건강에 손상을 입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자유’와 ‘방종’을 구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서들은 자신이 처했던 고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보통 후배에게 의도적으로 업무량을 늘려주거나 정리해 온 자료를 퇴짜 보냄으로 그렇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데 아무런 죄책감을 못 느끼는 데 자신이 처했던 업무보다는 후배들의 업무가 덜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심리를 이해하기 때문에 며칠정도는 그런 행동을 묵인해준다. 그러면 회복기의 사서들은 곧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후배에게 사과한다. 그러나 정도가 심하거나 그 기간이 지속 되는 경우가 있는 데 이럴 경우 제제를 가한다. 보통 그렇게 하면
“사서장님 너무합니다!!”
“난 지금 자네가 한 행동이 너무한다고 생각해.”
“전 옛날에 제가 했던 양만큼 후배들에게 주는 것뿐이라고요!”
“옛날에 자네가 했던 양만큼 후배들도 매일 해. 그러니 냉정하게 생각해. 그러지 않으면 나도 특단의 조치를 취할 거야.”
“으윽!”
조금 그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사서들을 그 이상 괴롭히면 곤란하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때만 그랬지 그는 평소에 매우 착하고 성실한 사서이다.
4. 긍지기.
마지막 심리기인 긍지기. 말 그대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긍지를 가지는 심리기이다. 잃었던 감정도 돌아왔고 사서들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대부분 과거 무한서고에 들어오기 전에는 몰랐던 무한서고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웃기게 들릴지 모르지만 심리기 1,2,3기에 그들은 무한서고의 업무 때문에 무한서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정신과 육체가 전부다 적응한 긍지기에 비로써 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사서들은 벅찬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가져다주는 자료하나 하나가 적게는 한 생명에서 많게는 수만의 생명을 구하고 있고 자신이 ‘돈’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에 감동한다.
한번은 긍지기와 회복기의 사서들이 무장국원들과 패싸움한 일이 있었다. 급히 사서들이 잡혀간 곳으로 가서 자초지정을 물어보았다.
“사서장님 글쎄 그 놈들이 말이죠”
거의 울음보 터지기 직전의 얼굴로 사서들은 나에게 자조지정을 설명했다.
‘도움도 안 돼는 자식들’
‘사무직이라 편하지? 우리는 목숨을 걸고 일한다 자식들아’
‘너희 따위는 없어도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조차 얼마나 피가 쏠리던지. 무한서고가 재기능을 한지 수년밖에 안되어서 관리국 내에서 무한고의 입지는 아직 좁다. 거기다가 사서로 전출가거나 발령받은 사람들은 ‘쓰레기’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무장국원들이 사서들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는 데 이 경우가 그 경우였다.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있던 사서들에게 이 말은 개인적인 모멸보다 더 큰 모멸감을 느끼게 했고 결국 패싸움에 이른 것이다.
“알겠습니다.”
난 자초지정을 듣고 그 말을 한 무장국원들의 소속 부서의 연락처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앞으로 귀 부서는 무한서고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겁니다.”
치졸한 분풀이일 수 있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일에 무한서고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지 깨닫게 해주는 좋은 계기가 된다.
4-1. 워커홀릭
무한서고를 워커홀릭의 집합소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무한 서고에 워커홀릭인 자들은 대부분 긍지기에 이른 사서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지며 자신이 한 일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때문에 일중독이라는 오명을 기쁘게 칭찬으로 받아들이다.
“사서장님 저에게 한숨의 잠보다는 한줌의 일을 주십시오!”
“식사시간도 반납할 때니 저에게 일을!”
“전 다음 주 휴가도 반납하겠습니다!!”
정말 이런 경우는 별로 없다……
끝으로
무한서고는 앞으로도 계속 관리국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가 이런 보고서를 발표하면 무한 서고에 사서가 더 이상 안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전 차원 인권협회는 무한 서고의 업무환경을 조금 더 개선해 주길 바란다.
앞으로 들어오는 사서들이여 자신이 무한 서고의 사서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자. 고되고 힘들지만 우리는 자랑스러운 무한서고의 사서이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사들이다.
-현 무한서고 사서장 아니, 과로의 수용소장 유노 스크라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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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군 도대체 이건?”
나노하가 한 서류뭉치를 읽으며 물어보았다.
“아 그거 말이야?, 4월 1일에 전 차원 인권협회하고 전 차원 심리학회에 제출한 보고서야.”
“진짜 무한서고 사서들이 이래?”
나노하는 정말 걱정된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노하.”
“응?”
“4월 1일은 무슨 날이게?”
“아!!”
“원래 사람을 낚으려면 새로운 떡밥보다는 강화된 떡밥이 더 좋거든, 하물며 전 차원 계를 낚는 다는 게 그 정도는 해줘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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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낚을 수 있다는 데 18kb 쯤이야...
안녕하세요 풍월객입니다 ^^.
시험기간 중에 아유슈비츠 수용소의 내용을 다룬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었는 데
무한서고 사서들도 비슷한 심리변화를 겪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과로의 수용소, 무한서고'라는
작품을 썼습니다.
설마 읽으면서 '정말 무한서고 사서들은 이럴꺼야……'라고 생각하신 분은 없겠죠?
기존 팬픽에서 무한서고의 업무는 상상초월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저기도 사람 사는 직장인데 어딘가의 강제 수용소만큼 심하겠습니까 ^^;;;;
내용이 조금 무겁고 글자수가 많아서 그냥 스크롤 내리시는 분들도 많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유노 스크라이어의 소실'로 만나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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