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눈치챘어야했다.
그랬더라면 몸이 아프다고 핑계라도 대서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아니 훈련 받는 국원 모두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 대한 혹독한 벌을 받아야만 했다.
“전진. 전진하세요. 왜 그렇게 느립니까. 죽고 싶은 건가요?”
진흙탕에 온몸을 밀착하게 포복자세로 전진한다. 이미 온몸은 진흙 범벅. 이게 애초에 옷이었는지 아니면 진흙으로 된 무언가였는지 알길이 없을 정도이다. 입으로, 코로, 눈으로 진흙탕물이 스며들어오지만 그런 걸로 전진을 지체했다간……
“크악!”
날아온 분홍색 포탄에 한 국원이 또 세상과의 이별을 고했다. 잘 가라. 네가 잘 보던 에로 잡지는 내가 수거해주마. 옆에 있는 녀석과 눈이 마주친다. 공포, 불안, 초조. 빌어먹을! 목구멍까지 욕지거리가 쳐 올라오지만 내뱉지는 못한다. 죽고 싶지 않으니까.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아니, 날인 것 같았다. 어느 때와 같이 배리어 재킷을 착용하고, 손 떼 묻은 디바이스를 챙긴다. 어젯밤 마셨던 술 때문에 아직도 해롱거리는 녀석의 머리를 한 번 흔들어주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연병장에 일렬종대. 너무도 평소와 똑같은 패턴. 단지 다른 게 있다면 교도관. 타카마치 교도관이 우리를 보며 웃고 있었다는 것.
그것도 단순히 웃고 있는 게 아니었다. 도자기로 만든 가면에 입만 억지스럽게 벌려놓은 것 같은 웃음이었다. 입 끝을 만진다면 베일 것 같은 웃음. 도망칠 기회는 그 때뿐이었는데 왜 몰랐을까.
“오늘은 유격 훈련을 하겠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듯이 타카마치 교도관은 금일 훈련 메뉴를 말했다. 그러나 국원들에게 그 말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맹렬하게 항의했다. 항명죄에 저촉될 정도로 거세게. 당연했다. 사전에 예고된 훈련 스케줄엔 유격 훈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하겠다니. 그 힘든 유격훈련을!
10분 정도 항의를 계속 듣고 있던 타카마치 교도관은 가장 거세게 항의하던 국원의 목을 한손으로 움켜잡고는……
“디바인 버스터.”
제로 거리 디바인 버스터를 날렸다. 그것도 연속 3방이나. 좌중 침묵. 그 때까지도 그 도자기 인형 같은 미소를 짓고 있던 교도관은 다시 한 번 우리들의 의향을 물어봤다. 물론 전원 찬성.
그 때부터 생지옥이 펼쳐졌다.
PT 체조 백회. 구호도 변칙적으로 틀리면 다시 처음부터 반복. 이건 그나마 워밍업에 불과했다. 연병장 30바퀴. 낙오는 용서하지 않는다. 아니, 낙오자는 죽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멈추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페이스가 떨어진 국원에겐 어김없이 분홍빛 광선이 쏟아졌다. 정말 말 그대로 쏟.아.졌.다. 선착순 3인만 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고 나머지는 또 30바퀴를 돌아야했다. 런너스 하이? 웃기지마라. 죽음의 공포 속에서 무슨 런너스 하이냐. 뒤에서 호랑이가 아니 마왕이 따라오고 있는데 그런 걸 느낄 수 있겠나. 런너스 하이가 아니라 런너스 다운이다.
진흙탕도 마찬가지.
속도가 늦춰지거나 앞에 가던 사람의 페이스가 느려져 진로 방해를 하면 어김없이 날아온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현실 같지도 않은 현실에 그나마 현실적인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었다. 훈련 종료 시간이 다가오자 다시 연병장에 종대로 섰다.
“오늘은 추가 훈련을 하겠습니다.”
교도관의 말과 동시에 국원 모두가 마른 침을 삼킨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팔이 제대로 굽혀지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그러나 항변할 수 없다. 말했다간 쓰러지는 게 아니라 그대로 세상과 바이바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떤 용기 있는 국원이 손을 번쩍 들었다.
“뭔가요.”
“오늘 오랜만에 고향 친구가 집으로 온다고 해서 일찍 가봐야될 것 같습니다. 양해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최대한 부드럽게 그리고 존경심과 애원을 담아 국원은 말했다.
“안돼요.”
“저기 오랜만이라……”
“닥쳐!”
“…………”
“그깟 친구가 대수야? 자기 목숨보다 소중해? 애초에 친구라는 건 허울 좋은 관계에 불과해. 자기가 불리할 땐 나 몰라라 하지. 뻔히 친구도 좋아하는 걸 아는데 그런 것 상관없다는 듯이 꼬리를 치고는 ‘와서 미안해 사실은……’ 뭐가 미안해라는 거야! 알면 접근하지 말았어야할 거 아니야!”
타카마치 교도관의 눈이 뒤집혔다. 오늘 살아 돌아갈 수 있으려나. 조용히 신을 향해 기도한다.
“이런 이런”
옆에 서있던 국원이 혀를 찬다. 무언가 아는 눈치다.
“타카마치 교도관 왜 저러는지 알고 있어?”
“그게, 오늘 저녁에 페이트 집무관하고 스크라이어 사서장이 데이트를 한다더군. 그런데 그 사실을 모르고 어제 타카마치 대위가 스크라이어 사서장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가 퇴짜 맞았다더군”
“…………”
“아까 기도하는 것 같던데. 오늘 살아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스크라이어 사서장과 페이트 집무관이 오늘 저녁에 얌전히 헤어져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오도록 기도하게. 아니면 오늘 같은 상황을 한 달 내내 겪어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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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어기기 모해서 예전에 써놨던 거 올려봅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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